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었다.
아버지와 오빠와 셋이서 살고 있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아버지가 지독한 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남긴 미라로 제대로 일하지도 않고 매일 술에 빠져 살았다.
기분이 언짢은 날엔 자주 집안에서 폭력을 휘둘렀다.
내 뒷바라지는 전부 오빠가 해 주었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오빠가 늘 나를 지켜주었다.
이런 집이라도 오빠와 함께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았다.
미라가 모두 떨어졌고, 아버지는 오빠와 내게 일을 시키려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벌 수 있는 액수는 너무나 뻔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무정하게도 오빠를 “팔아 치웠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의지할 곳이 없었고 오빠가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나는 그 집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오빠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거기 적혀 있는 방법대로 나도 오빠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드디어 오빠와 다시 이어지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다.
오빠가 “조직”이라 불리는 곳의 관리하에서 강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자를 통해 그 괴로움이 아플 정도로 내게 전해져 왔다.
“조직”의 관리는 엄격해서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오빠의 파트너가 협력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그 “파트너”에 대해 오빠는 자주 편지에 쓰곤 했다.
동료이자 친구로, 나이가 비슷한 동생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에 대해 적을 때만 오빠의 문장이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느샌가 나도 그 사람을 만나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오빠조차 만날 수 없는 이 상황에 그것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나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길지는 않았다.
집의 미라가 또 바닥을 보였다. 이번에는 내 차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 사실을 오빠에게 전하자, 그 이야기에 결심이 섰는지, 오빠는 파트너와 함께 “조직”에서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꼭 돌아갈게」라거나, 나를 「이 집에서 구해내겠다」거나, 그런 이야기만으로 엮인 편지의 말미에는 딱 두 줄의 불길한 문장이 있었다.
「만일 도주에 실패하더라도 파트너만큼은 살려낼 거야. 무슨 일이 있거든 그 녀석한테 부탁해.」
그게 오빠에게서 받은 마지막 편지였다.
결국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예상대로 나도 아버지의 손에 의해 “팔렸다”.
아버지는 뭔가 위험한 약에 손을 댄 것 같았다.
조만간 또 미라는 바닥을 보일 테고 그땐 그도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브로커를 거쳐 나 역시 “조직”으로 끌려갔다.
오빠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양성소”에 들어간 바로 그 시기였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망가졌을 것이다.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필사적으로 훈련에 몸을 던졌다.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음” 따위 가지지 않는, 지시만을 수행하는 “인형”.
그리고 밤이 되면 죽은 오빠와, 자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 앞으로 자신의 두 손이 피로 물들게 되리라는 생각에, 공포에 떨며 아침까지 기나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몸은 휴식을 요구했기에 하루에 1시간은 잘 수 있었다. 컨디션이 좋을 땐 2시간.
하지만 그 짧은 수면조차 악몽에 방해받기 일쑤였다.
그런 상태로 1년이 흐르고, 나는 이례적인 속도로 “양성소”를 졸업했다.
그리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의 파트너였던 그 사람.
한차례 “조직”을 배신했던 그는 마침 “재교육”을 끝내고 나와 팀을 짜게 되었다.
오빠를 죽인 장본인인 그를 처음엔 미워하기로 했다. 눈을 번뜩이며,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그를 감시했다.
여러 날이 지났고, 마침내 팽팽해진 신경이 한계를 넘어 끊어진 것일까, 아니면 본능이 “괜찮다”고 판단한 것일까. 어느 날 임무 뒤에 나는 그의 바로 곁에서 잠들어 버렸다. 1년 만의 깊은 수면이었다.
그의 곁은 오빠처럼 포근한 느낌이 있었다. 깨어난 나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는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흘린 눈물과 함께 마음에 걸어 두었던 족쇄가 풀리고 “인간의 마음”을 이제야 되찾은 기분이었다.
흐느껴 우는 나를 그는 당황하며 달래려고 했지만, 결국 울음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그는 오빠의 편지에 적힌 그대로의 인물이었다.
무뚝뚝하고 조금 서투르고, 하지만 파트너를 깊이 배려하는 상냥한 사람.
“조직”에 속박당해 살인을 강요당하지만 그래도 “인간”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사람.
다만 편지 속의 그보다 커다란 슬픔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오빠를 배신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편지에 남겨진 마지막 말에서 진실은 쉽게 추측되었다.
도주 후 절망적인 위기에 빠진 오빠와 스리.
두 사람이 살해당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는 편이 낫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죽이면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해봤자 분명 그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한다 해도 자신이 죽겠다고 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오빠는 그를 기습해서 그를 배신하는 시늉을 했다.
그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게 하고 그를 살렸다.
제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주고……지독한 사람이야, 오빠는.
그리고, 그의 곁이 내게는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마치 1년분의 수면을 되찾는 것처럼, 낮이든 임무 중이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그의 곁에서 잠이 들었다.
그가 종종 황당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항상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원인의 하나가 오빠와의 일일 것이다.
그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나는 몇 번이나 그에게 진실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안 돼! 아직 때가 아니야!
그는…… 연기가 서투르다. “양성소”에서 그런 훈련도 받았기 때문에 딱히 동작이나 표정이 서투른 것은 아니다.
다만 이상하게 성실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도가 지나치거나 역으로 모자라거나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예리한 사람에게는 쉽게 들킨다. 분명 천성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꺼리는 성품인 것이리라. 그러니 아직 그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도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조직”이 그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나는 그가 불리해질 만한 보고는 하지 않지만, 그 불안한 연기가 “조직”에 간파당했다간 그땐 속수무책이다.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없을 테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할도르 바른 암살 보고를 끝내고 난 후. 내 눈앞에 있는 남자는 평소와 명확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자가 바로 “관리인”―― 황제. 우리를 관리하고 살인을 강요하는 이른바 “악의 우두머리”다.
언제나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 불길한 기운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엠퍼러는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매처럼 조용히 흥분하고 있었다.
확실해! 엠퍼러는 그의 배신을 확신하고 있어!
아마 금방이라도 그를 죽일 작정인 거야……그렇다면 내 작전을 실행할 뿐. 내게 오빠에 대해 알려준 뒤 그와 짝을 지어 준 엠퍼러의 의도는 명백했다.
내가 복수심을 느끼는 것, 그를 함정에 빠뜨려 고발하는 것, 그에게 다시 절망을 맛보여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보고 즐기는 것.
우리는 “조직”의 도구인 동시에 엠퍼러의 장난감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 해주겠어――
보고를 마치고 파트너가 배반하려 한다는 것을 엠퍼러에게 전했다.
나는 거기다 장소와 시간을 지정해 그를 불러내 죽이는 절차까지 엠퍼러에게 이야기하고 승낙을 받았다.
로브 아래에 숨긴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말끝에 새어 나오는 유열의 울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해 질 녘, 그는 지정 장소인 산속의 언덕으로 왔다.
갑작스러운 배신 고발에 그는 심하게 동요했고, 거기에 오빠와 나의 관계를 이야기하자 그 얼굴에 경악과 절망과 체념이 뒤섞였다.
그의 그런 표정을 보고 나도 슬퍼졌다.
하지만 비웃음과 증오와 살의를 담은 시선을 그에게 보냈고 악의로 충만한 말들로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옆에 있는 엠퍼러를 속이려면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를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강철실로 공격하기 위해 접근했다.
하지만 진짜 의도는 엠퍼러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맥없는 반격을 받아내고 싱겁게 우위를 점했다.
강철실의 고리가 그의 목에 걸리고, 결판이 났다. 이제 아주 조금만 힘을 주면 그의 목숨은 끝이 난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걸로 끝이야」
연기가 아닌, 온전한 진심의 목소리.
강철실에 섞여있는 투명실이 내 움직임에 따라 죄어들었다.
나무들을 타고 멀리서 복잡한 기하학 문양을 이룬 실들이 순식간에 고리를 만들어 그 중심에 있는 사냥감을 잡아 올렸다.
――장난감이 살해당하는 순간에 집중한 나머지 주위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진 상태였던 엠퍼러를.
「끄으윽――――」
최선의 타이밍으로 가한 불의의 습격이 멋들어지게 엠퍼러를 속박했다.
이 투명실은 절단력이 거의 없지만, 이 실이 아니었다면 나무를 매개로 한 트릭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도는 강철실의 몇 배나 됐지만, 엠퍼러를 상대로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즉시 준비했던 다른 실을 힘껏 당겼다.
그러자 쾅쾅……하는 낮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언덕의 바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부터 이 근처에서 암반이 약한 곳을 찾아 준비해둔 것이다.
낙석이 무더기로 굴러 떨어졌다. 그 중엔 10에이쥬 이상의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엠퍼러의 머리 위쪽으로 “쿠우웅” 하는 굉음과 함께 땅을 울리며 떨어졌다.
낙석이 끝난 현장은 마치 지진이 일어난 뒤처럼 참혹했다.
저만한 질량에 직격을 당했다. 아무리 엠퍼러라 해도 살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죽지 않았다 해도 생매장이다.
옆에 있던 그는 아직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스-」
겨우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힘껏 그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내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곳. 그의 품 속에 파고들어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어리광을 부리는 건 역시 처음…… 하지만 정말로 무서웠단 말이야.
「이것저것 심한 소리를 해서 미안해……말 안 해서 미안해……」
설명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어쨌든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는, 그럼에도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인, 대체 무슨――」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낙석의 산이 희미하게 진동하더니 작은 돌들이 느리긴 하지만―― 공중으로 떠올랐다.
「뭐야!?」
놀라 눈을 부릅뜨는 우리들.
「공속성 아츠? 아니……」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아니면 비행선과 같은 비상 기관인 걸까?
모르겠어……머릿속을 뒤지고 있는데 그는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관리인”의…… 엠퍼러의 능력이야!」
「뭐?」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엠퍼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러는 동안 더욱 많은 돌들이 떠올랐다.
「도망가자! 나인!」
그가 멍해진 내 손을 끌어당기며 달리기 시작했다.
상당한 거리를 달린 뒤, 커다란 폭발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서는 마치 화산이 폭발한 듯, 거대한 바위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