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거리를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숙소에서 나온 스리는 차가운 공기를 폐로 들이마셔 가라앉은 기분을 어떻게든 씻어내려 했다.
이곳은 레미페리아 공국의 국경에 있는 마을 루젠트.
공국과 공화국 양쪽에서 활동하는 스리와 나인에게는 반은 거점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동쪽에는 공화국과의 국경문이 있고, 서쪽에는 극히 일부 사람들밖에 모르는 위험한 산길이긴 하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공화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있다.
보고를 위해 스리는 혼자서 지정된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풍화된 바위가 즐비한 작은 언덕이었다. 깊은 산속이라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거기서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검은 옷차림의 남자였다.
온몸을 낡은 로브로 가리고 있어 얼굴은커녕 체형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기묘한 차림새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을 주위 공간에 퍼뜨리고 있었다.
「보고하러 왔습니다, “관리인”」
「들어 보지」
“관리인”이라 불린 이 남자는 스리 일행을 관할하는 “조직”의 간부 중 하나다.
대 아르카나의 《황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조직”에서는 “관리인”이라고 불리는 일이 많았다.
“관리인”이라는 호칭대로 그는 스리를 비롯한 하급 전투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임무를 지시하고 보고를 받으며 “도구”를 직접 운용하는 존재였다.
스리는 전날 여객선에서의 임무에 대한 세부 내역을 “관리인”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마치고――
「다음은」
「예, 소드의 9의 행동에 관해서」
파트너의 행동 보고에 들어간다.
이것도 정기 보고의 일환으로, 파트너를 감시하게 해서 개별적으로 보고하게 한다. 자신의 행동 보고와 파트너의 감시 보고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조직”의 의심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각자 보고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배신 행위가 “조직”에 새어 나갈 거라는 공포를 주는 것도 그 목적 중 하나였다.
「이상입니다」
「음, 좋다. 다음 임무는 추후 지시하지」
「예, 그럼 이만」
스리가 그 자리에서 떠나려 한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스리」
뒤돌아보지만 여전히 “관리인”의 표정은 파악할 수 없다.
「그 일로부터 3년, 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순간 등줄기에 차가운 것이 달렸다. 질식할 정도로 농밀한 살기가 스리를 덮쳤다.
“그 일”이란 말할 것도 없이 3년 전 스리가 저질렀던 도주 미수이다.
“관리인” 엠퍼러는 종종 직접 “숙청”을 했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배신자는 그저 무참하게 살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조직” 안에서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3년 전에 스리와 에이스를 몰아붙였던 것도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그때와 같은 살기로 스리를 추궁하고 있었다. 설마 내 계획을 눈치챈 건가?
아니야, 신중하게 해왔어. 만일 뭔가 증거를 잡아냈다면 이미 나는 살해당했을 거야.
이건…… 시험하는 거다. 조금이라도 동요하면, 끝이야!
「농담이 과하시군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이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저는 사람을 죽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흉기”에 불과하니까요」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계산해가며 몇 번이나 훈련했던 입가의 형태와 시선의 각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있은 뒤, “관리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됐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답답한 살기가 안개처럼 흩어졌고, 전신을 짓누르던 중압감도 사라졌다.
「네게는 기대하고 있다」
「예,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스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어떻게든, 넘긴 건가…… 하아…」
숙소로 돌아온 스리는 숨을 토해내며 침대에 쓰러졌다.
딱히 뭔가 한 것은 아니지만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그만큼 “관리인”과의 대화에 정신을 소모한 것이리라.
그럴 만도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진의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스리는 다시 도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3년의 세월은 그에게서 자유의 뜻을 빼앗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인간”에 대한 동경이 계속해서 부풀어 오를 뿐이었다. 피에 젖은 양손은 갈수록 무겁고 추해져 간다. 나는 인간의 형태를 한 “도구”. 하지만 이대로는 그 형태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그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장치”, 단순한 “괴물”이 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미래였다.
――이번에야말로 도주에 성공해 주마!
성공을 위한 절대 조건은 “관리인”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는 것과 파트너인 나인에게 도주 계획을 끝까지 숨기는 것.
물론 그것은 나인을 홀로 놓아둔다는 것을 뜻한다.
몇 번이고 생사를 함께 한 파트너.
자신보다 어리고, 재능이 넘치면서도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소녀.
신기하게도 내버려둘 수 없다는 감정이 스리 안에 소용돌이친다.
몇 번인가 나인에게 털어놓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대검을 치켜들어 자신을 내리치려던 에이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런 일은 이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거면 돼.
잡념을 떨쳐내고, 스리는 도주 준비를 재개했다.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저녁이 되어 해가 제법 기울었을 무렵. 예전부터 준비한 덕분에 스리의 마지막 채비는 순조롭게 끝났다.
결행은 오늘 밤.
나인이 잠든 뒤 마을을 빠져나가 산길 쪽으로 국경을 넘는다.
공화국에 들어간 뒤에는 도력차로 이동하게 되는데, 사전에 준비한 렌터카로 북부의 대도시로 간다. 거기서 국제 정기 비행선을 타고 리벨로 향한다. 그 뒤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한동안 리벨에 머물지, 아니면 레만 근처로 갈지, 어쨌든 지금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다. 말단인 자신은 “조직”의 전모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도주에 성공하고야 말겠다!
까악―― 까악――
그렇게 스리가 벼르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방 안을 빙빙 돌았다.
「이건……」
그 다리에 채워진 독특한 장식을 보고 스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관리인”의 소집.
「이런 시간에?」
아직 보고를 마친지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새 임무 지시인가?」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스리.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추격자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상당한 거리를 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도망친다 해도 소집을 거부한 시점에서 배반한 것으로 간주되어 곧장 추격자가 쫓아와 맥없이 끝이 나게 될 것이다.
마음을 정하고, 스리는 지정된 장소로 갔다.
그곳은 아침과 같은 산속 언덕이었다.
아침의 고요한 스산함은 온데간데없고, 석양에 비친 바위는 멀리서 보니 마치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두 사람의 모습이 스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관리인”.
변함없이 낡은 로브를 두른 그 모습은 《황제》보다는 차라리 《은자》라 하는 편이 적절할 듯했다.
다른 하나는 커다란 봉제인형을 안고 있는 어린 소녀―― 나인이었다.
입은 옷은 저번의 드레스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보였으나, 장식이 적어 어느 정도 움직이기 편해 보였다.
새로 임무를 지시하는 거라면 나인이 여기 있어도 부자연스러울 것은 없다.
다만 미세하게 평소와 다른 그 분위기가 스리의 불안감을 더욱 가속시켰다.
「――왔나」
「예, 용건은 무엇입니까?」
평소와 같은 대화. 그러나 그것이 금세 다른 내용으로 변한다.
「변명을 들어 볼까」
「변…명?」
「네 배반은 이미 고발되었다. 거기 있는 소드의 9에 의해」
「뭐!?」
말을 잃는다.
예상 가능한 모든 사태 중 최악의 전개가 눈앞에서 형체를 갖추었다.
절망이 파도처럼 스리를 덮쳤다. 또? 또 그때와 마찬가지인가?
또 나는 배신당했…… 아니. 나인과는 딱히 약속한 것이 없었다.
이게 나인의 일이고, 나는 그것을 알고 나인을 신용하지 않았다.
파트너란 그런 것이다.
그냥 그뿐인 것이다. 그뿐이다.
「이건 분명 뭔가 착각한 겁니다!」
소용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리는 어떻게든 변명하려 했다.
「발뺌해 봤자 소용없어, 스-, 아니, 스리」
드디어 입을 연 나인. 평소의 졸음 어린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음성이 스리의 귀에 들린다.
나인은 봉제인형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스리 쪽으로 내밀었다.
「이건 네가 예약한 리벨 왕국행, 내일 정오의 국제 정기 비행선 티켓이야」
「!!?윽」
충격과 함께 「티켓은 내가 가지고 있는데!」라고 외치고 싶어졌으나, 그런 짓을 했다간 당연하지만 자폭하게 된다.
스리의 의문에 대답하듯 나인은 말을 이었다.
「너한테 있는 티켓은 위조한 가짜. 내가 바꿔치기했어」
이전 임무에서 썼던 수법에 설마 자신이 당하게 될 줄이야.
「덧붙여 그 티켓을 구하기 위해 사용한 명의는 1년 전 임무에서 위조에 사용했던 제니스 왕립학교 학생, 라인스 포겔트, 맞지? 그때 그 서류를 아직 가지고 있는 걸 보면 꽤 오래 전부터 도주 계획을 세운 모양이야?」
역시 나인은 천재라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 스리의 뇌리를 스쳤다.
여기까지 간파당한 이상 이미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리에게는 아직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아무리 이것이 일이라 해도, 아무리 나인이 천재라 해도 자신 역시 무척이나 신중하게 행동해 왔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간단히 발각당했다. 대체 어째서?
「어떻게 들킨 거냐는 표정이네?」
작게 웃는 나인. 그 말 속에 비웃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스리는 느꼈다.
「계속 널 보고 있었기 때문이거든? 너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
물론 그것은 달콤한 말은 아니다.
「보고, 바라보고, 관찰하고, 감시하고…… 언제 네가 마각을 드러낼지,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그야말로 너와 파트너가 된 그 순간부터, 계속」
나인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스리는 점점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네가 이렇게 실제로 “조직”을 배신했지만, 만일 정말 그럴 생각이 없었어도 조만간 내가 날조했을 거야」
“관리인”이 이 자리에 있음에도 나인은 그렇게 내뱉었다.
스리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일로서 자신을 감시했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래서야 마치 처음부터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던 것 같은…… 거기서, 한동안 침묵하던 “관리인”이 낮게 웃었다.
「그렇군, 너는 아직 모르는군, 그녀에 대해서」
“그녀”가 나인을 뜻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모른다”니, 무슨 뜻이지?
나인을 본다. 스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증오를 머금은 시선에 자기도 모르게 전율했다.
「네가 죽인 옛 파트너, 소드의 1은 내 친오빠야」
순간 스리는 심해에 가라앉은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몽롱한 의식은 정상적인 사고를 용납하지 않았고, 찌부러질 듯한 중압감 속에서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이것으로 드디어 오빠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됐어」
나인이, 에이스의 동생?
나인은 처음부터 3년 전의 일을 알고 있었고, 날 감시했고, 내 곁에서 기회를 노려왔다.
내게―― 복수하기 위해.
마치 입에 말을 구사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처럼 스리는 그저 망연자실했다.
「이제 확인은 충분하겠지. 다음은 숙청의 시간이다. 자, 나인. 규칙에 따라 파트너이자 고발자인 네가 죽이도록」
“관리인”의 말을 듣고 나인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내 손을 빌려도 좋다, 포상도 그대로다. 그저 숨통만 직접 끊으면 된다. 그러면 너는 정식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 놓아주기에는 실로 아까운 재능이다만」
“포상”.
그것은 배신자인 파트너를 고발해 죽이면 주어지는 “자유”로워질 권리.
지금의 나인은 그야말로 스리가 바라 마지않던 그 “자유”에 도달하려 하고 있었다.
「아뇨, 저 혼자 하게 해 주세요. 오빠의 원수는 이 손으로 갚겠어요」
「좋다」
다시 한 발짝, 나인은 앞으로 나왔다.
곰인형에서 독침을 꺼내더니 재빠르게 스리에게 던진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독침을 떨쳐내는 스리. 거기서 단숨에 거리를 좁혔어야 했으나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방어한 것도 몸에 밴 싸움의 감각이 불러온 반사적인 동작일 뿐, 의식하지 못했다. 싸울 의사는 없었다.
상대가 나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싸워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설령 나인을 쓰러뜨린다 해도 그 뒤에 있는 “관리인”―― 《황제》에게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운명이라는 건 이미 뒤집을 수 없었다……나인은 다시 독침을 꺼내더니 아까의 두 배를 스리에게 던졌다.
스리는 두 자루째의 검을 뽑아 그것을 전부 쳐냈다.
――그런가, 그렇군, 이게 인과응보라는 거구나.
그러자 나인이 스리에게 접근해 다시 공격을 가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친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내게 “자유”로워질 자격이, “인간”이 될 자격이 있을 리 없지.
바늘과 실을 병용한 나인의 공격.
평소에는 스리가 접근전에서 나인에게 뒤지는 일은 없었으나, 거의 무의식으로 응전하는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느새 스리의 목에 강철실의 고리가 걸렸다.
――그럼 그 복수로 살해당하는 것도 당연한가. 나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고리가 죄어들었다.
「이걸로 끝이야」
이제 여기까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스리는 조용히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은 찾아오지 않았다.